Panel: 미-러시아 관계의 재설정
Date/Time: 2015년 4월 29일 (수요일) / 10:45-12:00
Session Sketch by: 최현정,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Moderator: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Speakers:
엄구호,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장
스비틀라나 코브자르, 랜드연구소 연구위원
길 로즈만, 아산포럼 편집장
드미트리 수슬로프, 모스크바고등경제대학 유럽 및 국제연구센터 부소장
‘미-러시아 관계의 재설정’ 세션은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세션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고조된 러시아와 서구의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사회의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랜드연구소의 스비틀라나 코브자르 연구위원은 “유럽의 관점에서 볼 때 NATO가 확장되면서 러시아의 불안감이 확대되어 왔다”며 “우크라이나의 NATO 편입 가능성이 나타나면서 오히려 이 지역을 냉전의 붕괴와 함께 사라진 완충지역(buffer zone)으로 부활시키려는 러시아의 전략적 판단 때문에 갈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러시아의 대미 외교의 결과가 아닌 대유럽 정책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스크바고등경제대학 ‘유럽 및 국제연구센터’ 드미트리 수슬로프 부소장은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포함해 현재의 상황은 ‘위기’라기 보다 탈냉전 이후 유럽에서 미-러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어가는 과정”이라며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갈등이 아니라 러시아가 지금까지의 합법적이고 적절한 조치들을 취했는데 미국이 반 러시아 세력을 지원하는 등 지역에서 불안감을 조성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산포럼 편집장인 길 로즈만 박사는 “분명히 러시아는 이 지역에서 근본적인 위기 상황을 초래하고 있고 그 근원에는 국익보다는 구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 문제가 놓여 있다”고 반박했다. 구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는 탈냉전 이후 확장되는 서구 세력과는 양립할 수 없는 국가 정체성의 문제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비슷한 사회주의 유산을 공유하는 중국과의 관계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미-러간, 혹은 러시아와 유럽 간의 전략적 불신에 한반도 상황은 더욱 불안해 질 수 밖에 없는데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의 엄구호 소장은 “오랫동안 미국의 러시아 정책기조였던 ‘포섭과 통제’가 유효했지만 이제 러시아는 더 이상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미-러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화를 맞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그 이유로 다음의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유럽 위기의 근본 원인을 푸틴이라는 지도자 1인의 등장으로 찾으려는 미국 중심적인 생각은 미국의 대 러시아 정책 부재 상황을 보여줄 뿐이라는 점, 둘째, 셰일가스 개발 등으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인 미국은 더 이상 러시아를 중요한 경제 협력 파트너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점, 셋째 러시아가 구 소련 지역에서 확고한 지배력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미국과는 상반되는 정책기조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이러한 입장들이 국내정치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러시아가 유발하는 위기와 함께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정책으로 인해 유럽국가들의 위기 의식이 커질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엄 교수는 “우크라이나는 강대국 간의 분쟁지역화 됐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쉽지 않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으나, NATO가 사상 최소 규모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적 위기로 치닫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오히려 유럽에서 에너지 시장이 축소되면서 러시아는 아시아에서 시장을 찾는 또 다른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미트리 부소장은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팽창주의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서구의 팽창주의에 대응하는 실용주의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고 주장하였다. 즉 러시아는 서구의 일부로 EU나 유럽과 평등한 입장에서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를 설정하려는 것이며 미국이 이러한 러시아의 입장을 수용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은 러시아가 중국이나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는 것을 지지하지 않아왔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반도와 지역적으로 멀지만 요동치는 유럽의 상황이 한반도에는 어떠한 의미를 주는 것일까? 참가자들은 러시아가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한-미-일의 전통적 안보협력 관계를 넘어 중국, 러시아와 같은 대륙 세력과의 안보협력도 모색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 특히 한국은 오랜 냉전의 기억 때문에 러시아를 정치적 협력동반자로 인식하지 못해 왔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와의 경제관계의 성숙도가 높아진 지금 한국은 달라진 러시아와 새로운 정치적 협력관계를 설정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